기장문화원

  • 전체메뉴 아이콘
  • 전체메뉴
위로 가기
  • 홈으로
  • 기장의 역사     >
  • 기장의 역사 > 역사적유래
기장문화원 서브탑슬라이드 기장문화원 서브탑슬라이드 기장문화원 서브탑슬라이드 기장문화원 서브탑슬라이드

기장의 역사

기장의 역사적 유래를 알아본다

아득한 옛날 원삼국시대 기장은 부족국인 거칠산(居漆山)국에 속해 있었다. 거칠산국은 지금의 황령산(荒嶺山)쪽을 비정하고 있다. 삼국사기에는 독노국, 장산국 또는 내산국등으로 표기하는 곳이 이 지역일 것이라고 학자들은 보고 있다.

서기 57년, 79년 사이 신라 제 4대 석탈해왕 때 거도(居道)장군이라는 장군이 장토야(張吐野)라는 들판에서 말놀이를 하므로 주민들은 해마다 하는 행사라고 여기고 또한 그를 마숙이라고까지 칭하고 있었는데, 어느 날 군사를 일으켜 거칠산국을 공격하여 멸망시켰다.

이 멸망된 땅에 서기 505년 신라는 제 22대 지증왕 6년에 와서 한 곳은 거칠산국(居漆山國) 또 한곳은 갑화양곡현(甲火良谷縣), 그리고 한 곳은 대증현으로 각각 고을을 설치하였다.

이로서 최초에 고을이 탄생됐다.
서기 757년 신라 경덕왕 16년에 와서 전국적으로 고을의 이름을 한자로 개칭할 때, 거칠산군은 지금의 동래(東萊)로 갑화양곡현은 기장(機張)으로 개칭되었다. 갑화양곡현으로 존속한 기간이 252년, 기장으로 불러진 이래 지금까지 1242년이다.

고을이 생긴 이후 무려 천오백년의 긴 역사를 가지고 오늘에 이르고 있다.

기장 전경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