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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명유래

기장읍

機張邑의 沿革

原三國時代까지는 東萊지방을 중심으로 이룩된 居柒山國의 甲火良谷이었다가 서기 79년신라의 석탈해왕때 신라에 정복되었다.

  • 서기 505년 (신라 지증왕 6년)
  • 新羅 居柒山郡의 甲火良谷縣이 되었다.
  • 서기 757년 (신라 경덕왕 16년)
  • 東萊郡의 領縣으로 機張縣으로 改名되었다.
  • 高麗時代에는 서기 983년 (성종2년) 김해(금주)의 영현이 되었다가 그 후에 양산에 영속 되었다가 서기 1018년(현종 9년)에 울산에 영현되면서 감무를 두었다.
  • 서기 1304년 (충렬왕 30년)
  • 양산의 영현으로 되고 현감을 두었다.
  • 조선시대에 와서는 서기 1413년 (태종 13년)에 읍내면과 동서남북의 면을 두었다.
  • 서기 1599년 (선조 32년) 임진왜란 후에 기장현은 폐현이 되고 북쪽은 울산의 하미면(下味面)으로 편입되고 남쪽은 동래현에 편입되어 분할되었다.
  • 서기 1617년 (광해군 9년)
  •   機張縣은 다시 復設되었다. 그러나 북쪽은 울산의 下味面으로 그대로 방치되었다.
  • 서기 1653년 (효종 4년)에 下味面을 54년 만에 機張縣으로 復歸하였다가 그 7년후 서기 1660년에 다시 울산의 下味面으로 빼았겼으며, 서기 1681년 (숙종 7년)에 다시 21년만에 機張縣으로 復歸하였다.
  • 서기 1895년 (고종 32년) 5월 26일 機張郡이 되었다.
  • 서기 1914년 3월 1일 機張面이 되고 日光面, 長安面, 鼎冠面, 鐵馬面이 分割되고 모두 東來郡에 屬하였고 機張面에는 동부리, 서부리, 대라리, 죽성리, 신천리, 청강리, 연화리, 대변리, 교리, 만화리, 내리, 석산리, 당사리, 시랑리, 송정리의 15개 동리가 속하였다.
  • 서기 1963년 1월 1일 송정리가 부산시에 편입되었다.
  • 서기 1973년 7월 1일 동래군은 폐지되고 양산군에 속하였다.
  • 서기 1980년 12월 1일 機張邑으로 승격되었다.
  • 서기 1995년 3월 1일 부산광역시 기장군으로 개청되었다.

機張邑名 由來

기장의 옛 이름은 갑화양곡이고 별호는 차성이다.
기장은 큰 벌이라 불렀고 큰마을(大邑城)의 뜻이다.
갑화양곡 이라는 옛이름을 "가벌둔"이라고 하여 현대어로 "산에 둘린"이라고 해석하는 분도 있고, "갓벌"이라 하여 "변두리 마을'이라고 해설하는 분도 있다.

옛지명에 甲, 加는 갓(邊)의 뜻이고 호는 "불" "벌"로 발음하고, 벌은 마을, 성을 뜻하므로 변두리 마을로서 "邊城"의 뜻이라고 한다.

모두 타당한 풀이로 생각되지만 갑화양곡은 "큰 마을"로 해석하고 싶다. 옛지명에 甲은 크다(大)의 뜻이고 화는 "불" "벌"로서 곧 마을이나 성을 뜻할 것이다.

機張의 由來

기장이라는 지명을 풀이하는데 두가지 해설이 있다.

첫째 : 옥녀직금설
기장은 옥황상제의 옥녀가 이곳에 내려 와서 베틀을 (織機) 차려서 (張) 비단을 짜고 (織錦) 물레질 (紡車)을 한 곳(城)이기 때문에 베틀機와 베풀張으로서 機張이라 하였고 그 별호를 車城이라 하였다고 한다. 차성가도 이 설에 의거하여 "읍기를 구어 보니 옥녀직금 분명하다"라고 하였고 수령산(繡嶺山), 성산(筬山) 수계교(繡溪矯) 직금루(織錦樓) 등의 이름이 있는 것은 모두 이설에서 유래된 것은 분명하다. 그래서 기장의 고로들이나 선비들은 모두 이 설을 절대적으로 信하고있다.

둘째 : 대읍성(大邑城)설
이 설명은 앞서 설명한 바와 같이 機張과 甲火良谷은 같은 뜻이라는 전제로 이를 대응시켜서 설명하는 것이다. 甲은 크다(大)이고 機도 크다(大)의 표기이다. 火良은 "활"의 표기로 이를 불, 부리, 벌, 펄로서 火, 伐, 弗, 夫里, 富里의 표기와 같다. 신라의 張保皐를 弓福이라고 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서라벌의 벌과 같은 말이다. 이는 모두 마을(邑里)의 표기인 것이다. 그래서 甲火良은 큰벌, 기장도 機張로서 모두 "큰 마을"이다. 皆火 加弗城, 居拔城, 只伐只, 夫夫里, 등의 옛지명도 모두 "큰마을"이라는 표기라할 것이다.

구체적으로 이를 보면,

密城郡本推火郡 景德王改名 今因之
眞寶縣本柴巴火 景德王改名 今浦城
富里縣本百濟波夫里郡 景德王改名 今福城縣
陵城郡本百濟介陵夫里郡 景德王改名
曲城郡本高句麗屈火郡 景德王改名

위에서 "火" "夫里"는 모두 "城"으로 한역하였음을 볼 수 있다. 이런 예는 전국적으로 40곳이 넘는다.

甲이 크다(大)의 실례로서,

唐嶽縣本高麗加火押 高丘縣本仇火縣
乃丘縣 其買縣 慈仁縣本新羅奴斯火縣一
云其火 機張縣 本甲火良谷縣
등을 들 수 있다.

車城의 유래

차성이라는 지명은 전국에 몇 군데 있는 것 같다.
차성은 수레로서 사라(斯羅) 사로(斯盧) 신라(新羅) 서라(徐羅)등과 같이 모두 수리(首)의 뜻을 가졌다. 즉 車는 首와 같은 뜻으로 수레는 수리로서 정수리(首)의 옛말이 된다. 그 예시로서,

車城縣本高句麗上(一作車)忽縣景德王改名
今龍城縣 上忽(一作車忽)
述爾縣一云首泥忽 述川郡(一云省知買)
戊城縣本高句麗首爾忽

위에서 "車"는 "首"를 뜻한다는 것은 분명하다. 그래서 車城은 首城인 것이다.

首城은 곧 大城이니 큰마을이 된다. 옛지명은 대체로 큰마을이니 하는 보통명사에서 고유명사로 변화되었음을 여러 곳에서 엿볼 수 잇다. 외국에서도 히말라야는 눈산이고, 나이아가라는 물이 크다는 뜻이라고 한다.
결국 기장의 해설에서 옥녀직금설은 기장과 차성의 등식관계는 설명되나 갑화양곡과는 관련성을 설명할 수 없다.
이런 설은 朝鮮을 朝日鮮明으로 해설하고, 新羅를 德業日新 網羅西方으로 해설하는 것과 같은 것이고, 기장이라는 지명이 생겼을 때는 우리나라에 풍수설은 아직 없었다.
결론적으로 甲火良=機張=車城 이라는 관계를 살펴보면 갑은 큰(大)이고 화양은 벌(마을城)이 되고 機는 큰(大)이고, 張은 벌(마을城)이 되고, 車는 首로서 역시 큰(大)이고 성은 그대로 마을이 되어 갑화양곡이나 기장이나 차성은 모두 "큰마을(大城)의 뜻이 되는 것이다.
이런 뜻으로 기장을 갑화양곡이라고 표기 하였는데 "큰벌"이라 하였는지 "큰실"이라 하였는지 그 발음은 "갑화양"과 비슷하였을 것이라고 짐작된다.
機張이 무슨 大邑城이 될 수 있느냐고 반문할 지 모르나 가까운 彦陽面은 己抵國이었고, 염포면은 再亥國이었으니 이런 國도 못되는 大邑城은 당연하다 할 것이다.
그리고 부산직할시는 불과 1백년 전만하여도 어민 2천명의 작은 漁村이었고,東來郡東平縣의 釜山面에 불과하였다.
要約하면 機張은 옛이름이 갑화양곡이고 별호는 차성이다. 기장은 옥황상제의 옥녀가 하강하여 베틀(機)를 차리고 (張) 비단을 짜고 (織錦) 물레질(紡車)을 한 곳(城)이기 때문에 機張이라 하고 車城이라 하였다는 전설이 있다.

甲火良谷이나 車城, 그리고 機張이라는 지명은 甲은 크다로서 大, 火良은 벌로서 城이므로 甲火良谷은 큰성의 뜻으로 大城이라 번역되고, 車는 수리(정수리)로서 首, 城은 벌로서 城이므로 車城은 으뜸되는 큰성 머리성의 뜻으로 首城으로 번역되고, 機는 크다로서 대, 張은 로서이므로 큰성의 뜻으로 機張은 大城으로 번역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