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장의 역사와 문화

산과 바다, 그리고 사람이 함께하는 곳, 기장

기장의 역사
기장(機張)의 역사
  • 기장은 삼한 시대 동래 지역의 거칠산국(변진독로국) 영역에 속해 있다가 5세기 중반, 거칠산국이 거도(居道)의 공격으로 신라에 병합되면서 갑화량곡현(甲火良谷縣)이 되었다. 신라 경덕왕 16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현재의 이름인 기장현으로 불리게 되었다. 이후, 고종 32년(1895년)에 기장군으로 변경되었다가 1914년, 동래군에 편입되었다. 광복 후인 1973년에는 양산군으로 편입되어 양산군 동부출장소가 설치되었다. 1995년 부산직할시의 광역시 승격과 함께 부산광역시 기장군으로 복군 및 편입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삼한 시대 – 거칠산국(변진독로국)의 읍락(邑落) 혹은 소별읍(少別邑)으로 추정
    5세기 중반 – 신라에 편입되었을 것으로 추정
    757년 – 경덕왕이 갑화량곡을 기장현으로 개칭
    1018년 – 울주로 이속 (별호: 차성)
    1895년 – 기장군
    1914년 – 동래군으로 편입
    1973년 – 양산군으로 통합
    1986년 – 양산군 동부출장소 설치
    1995년 – 부산광역시 기장군으로 편입 및 복군
기장 지명 유래
  • 기장군 지명 유래에는 몇 가지 설이 있다. 우선 갑화량곡이라는 지명은 바다에서 육지에 닿는 첫 번째 큰 마을이라는 의미가 있으며 이는 바다와 인접한 기장의 지형적 특성에 기인한다. 현재 불리는 기장이라는 명칭은 공자가 편찬한 역사서인 『서경(書經)』 태갑(太甲) 상편(上篇) 나오는 ‘若虞機張이어든 往省括于度則釋이니 欽厥止하사 率乃祖攸行하시면 惟朕이 以懌이며 萬世에 有辭하시리이다’라는 문장에서 유래한 것으로 추측된다. 이는 쇠뇌를 발사할 때 법도에 맞게 올바르게 장전되었는지 신중히 살피고 발사해야 하는 것처럼 정치 역시 법도에 맞게 행하면 그릇되지 않는다는 뜻을 담고 있는데 변방을 방어하는 기장의 군사적 성격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이를 뒷받침하듯 기장에는 산성을 비롯해 읍성, 왜성, 수군 진지, 봉수대 등의 군사유적들이 현재까지 남아있다. 다른 유래로는 옥녀가 베틀(機)을 차려(張) 물레질을 한다는 뜻의 이른바 옥녀직금설에서 기장이 나왔다는 설도 전한다. 기장은 차성(車城)으로도 불리는데 이는 고려 시기 만들어진 기장의 별호(別號)이다.
문헌자료
  • ‘기장현은 본래 갑화량곡현이다’
    - 동래군은 본래 거칠산군으로 경덕왕이 이름을 바꿔 지금도 그대로 일컫는다. 영현이 둘이다. 동평현은 본래 대증현인데 경덕왕이 동평으로 이름을 바꿔 지금도 그대로 일컫는다. 기장현은 본래 갑화량곡현으로 경덕왕이 기장으로 이름을 바꿔 지금도 그대로 일컫는다. - 삼국사기 권제34 잡지 제3 지리1

    ‘기장현은 본래 신라의 갑화량곡현이다’
    - 기장현은 본래 신라의 갑화량곡현이었는데 경덕왕이 지금 명칭을 고쳐서 동래군 관할 아래에 현으로 만들었다가 후에 본주에 이속시켰다. 현종 9년에 다시 울주에 이속시켰고 후에 감무를 두었는데 차성, 또는 거성이라고 한다. - 고려사 권57 지11

    ‘기장현(機張縣)’
    - 본디 갑화량곡현인데 경덕왕이 기장으로 고쳐 동래군에 영현으로 삼았고 고려 현정 무오 9년에 울주에 붙였다가 뒤에 감무를 붙였다. 별호는 차성 또는 거성이다. 사방경계는 동쪽으로 바다에 이르기 12리, 북쪽으로 울산에 이르기 12리다. 호수가 174호, 인구가 397명이다. 봉화가 1곳이니 남산으로 현의 동쪽에 있다. 서쪽으로 동래 간비오봉화에 응하고 북쪽으로는 울산 임을랑포에 응한다. - 세종지리지 150. 경상도 경주부

기장(機張)의 연표
시대 연도 주요 사건 및 내용
삼한시대 거칠산국(居漆山國) 영역의 읍락 혹은 소별읍으로 추정
신라 5세기 중반 신라에 복속, 당시 정확한 명칭은 알 수 없으나 갑화량곡성(城) 혹은 촌(村)으로 불렸을 것으로 추정
통일신라 757년(경덕왕 16년) 한화(漢化)정책 실시로 기장현으로 개칭 후, 동래군의 영현((領縣)으로 이속됨
고려 1018년(현종 9년) 울주(蔚州, 현재의 울산)로 이속 후 감무(監務)를 둠, 별호로 차성(車城)을 사용
1304년(충렬왕 30년) 양산군에 이속
1391년(공양왕 3년) 속현(屬縣)에서 주현(州縣)으로 승격되어 기장군(郡)이 됨
조선 1394년(태조 3년) 전국을 8도로 개편하면서 기장현으로 변경 됨
1413년(태종 15년) 기장현이 주현으로 승격되며 현감이 파견됨
1592년(선조 25년) 임진왜란 발발로 기장현이 점령당함
1599년(선조 32년) 기장현이 폐현되고 남쪽은 동래현으로 북쪽은 울산군으로 분할되어 편입됨
1617년(광해군 9년) 기장현이 복현됨
1653년(효종 4년) 기장현감 강유후의 상소로 울산군에 편입되었던 하미면을 되찾음. 그러나 7년 후 다시 울산으로 편입됨
1681년(숙종 7년) 기장현감 신담과 선비 김상남, 김의창의 진소(陳疏)로 하미면이 기장현으로 재편입됨
1895년(고종 32년) 을미개혁의 결과로 동래부 기장군으로 개칭. 예하에 읍내면, 동면, 남면, 중북면, 하서면, 상서면, 상북면을 둠
일제강점기 1914년 3월 1일 경상남도 도령 제1호로 기장군이 폐지되고 동래군에 속하게 됨. 기장면, 장안면, 일광면, 정관면, 철마면의 5개 면으로 행정 구역이 개편됨
광복 이후 현재 1973년 7월 1일 법률 제2597호에 의하여 동래군이 폐지되고 양산군에 병합됨
1980년 12월 1일 기장면이 기장읍으로 승격
1985년 10월 1일 장안면이 장안읍으로 승격
1986년 11월 1일 양산군 동부출장소가 설치되어 5개 읍면을 관할 함
1995년 3월 1일 부산광역시 승격과 함께 기장군으로 복군 및 편입됨
2015년 9월 23일 정관면이 정관읍으로 승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