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장의 역사와 문화

산과 바다, 그리고 사람이 함께하는 곳, 기장

지명유래
기장읍
기장이라는 명칭의 유래에 대해서는 정확히 밝혀진 바는 없다. 다만 갑화량곡의 경우 대읍(大邑) 즉 큰마을, 혹은 바닷가 첫 마을이라는 뜻이 있다고 알려져 있고 기장의 경우 활시위를 당기고 있는 형태를 뜻한다고 전해진다. 이를 바탕으로 기장이 예로부터 군사적으로 무척 중요한 요충지 역할을 해왔음을 알 수 있다. 고려 시대 사용된 차성(車城)이라는 명칭 역시 수레, 혹은 첫 번째라는 뜻으로 알려져 있다. 이를 뒷받침하듯 기장에는 산성을 비롯해 읍성, 왜성, 수군 진지, 봉수대 등의 군사유적들이 현재까지 남아 있다.
장안읍
옛 『기장군향토지』에 따르면 장안(長安)은 성내(城內)라는 뜻의 ‘잣안’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그러나 장안읍 내에 성의 흔적은 찾아볼 수 없으므로 이보다는 경내의 고찰인 장안사(長安寺)의 이름에서 따온 것으로 보는 것이 옳다고 판단된다. 또한 장안읍에는 장안사 외에도 장안리, 장안봉산 등의 명칭이 함께 전해지는 것으로 보아서도 길게 오랫동안 평안하라는 좋은 뜻의 장안이라는 이름이 지명으로 정해진 것으로 보인다.
정관읍
정관이라는 명칭은 일제강점기인 1914년 행정구역 조정 과정에서 정해졌다. 정관면의 중심인 덕산에서 매남산(매암산)을 바라보면 산의 남서쪽 8부 능선쯤에 흡사 솥, 혹은 솥뚜껑을 엎어놓은 듯한 지명이 보인다. 때문에 예전부터 정관 주민들은 이곳을 소두방 혹은 소산평이라고 불렀고 그 아랫길을 소두방재라고 불렀다. 소두방재는 철마, 동래 방면으로 나가는 중요한 길목이었기에 행정 지명을 정할 때 이러한 상징성을 살려 한자음으로 정관(鼎冠)이라는 명칭을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
일광면
일광이라는 명칭은 일광산에서 유래했다. 일광산의 정상은 백토로 되어있어 예전부터 백두봉(白頭峰), 즉 흰빛뫼라고 불렀는데 이 흰빛뫼가 점차 변하여 해빛뫼로 불리고 이를 한자어로 바꾸는 과정에서 일광이라는 이름이 지역 명칭으로 정착된 것으로 보인다. 일광산과 주봉인 백두봉의 명칭은 기장현읍지 기록에는 등장하지 않지만 약 200년 전에 지어진 차성가와 1638년에 작성된 기장향교 남루 상량문에 그 기록이 남아있다.
철마면
철마면의 지명은 기장군내에서 가장 높은 산인 철마산(604m)에서 유래했다. 철마산의 명칭은 과거 철마지역에 해일이 일어나자 동해 용왕의 명령으로 홍수를 다스려 사람들을 구한 뒤, 굳어져 쇠말(鐵馬)이 되어버린 용마(龍馬)전설에서 유래했다. 철마산은 과거 쇠말산, 샛말, 소멀미라는 이름으로도 불렸으며 여기에서 철은 샛, 즉 동쪽이라는 뜻이며 말은 ‘크다’, ‘으뜸’ 이라는 뜻이 있다. 소멀미라는 명칭 역시 ‘우뚝 솟은 산’이란 뜻이 담겨있다. 인근 지역에서 가장 높은 철마산의 이러한 상징성에서 철마면의 명칭으로 정해진 것으로 보인다.